세상을 살다 보면 모른척해야 할 일들이 많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야 해. 그들의 고통이 우리 딸들과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이 그들처럼 방탕한 생활을 했어? 우리 딸들은 그들과 달라!
펄롱의 아내 아이린이 한 말이다. 남자 주인공 빌 펄롱은 막달레나 수녀원에 석탄을 납품한다. 외상 하거나 금액을 늦게 지불한 적이 없는 우수거래처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막달레나 수녀원의 추악한 뒷모습을 알아버렸다. 미혼모, 매춘부, 성폭행 피해자, 버림받고 돌봐 줄 가족이 없는 어린 고아 소녀들은 막달레나 수녀원에서 생활한다. 수녀원은 그들을 돕는다는 이유로 세탁소에서 일을 시켰다. 그곳은 복지를 위한 시설이 아닌 수용소였다. 어린 소녀들은 노예 수준의 노동과 학대, 폭력과 감금을 노출되어 있었다.
소설의 배경인 아일랜드는 1921년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영국군에 지원하여 참전하였다. 세계대전 이후 낙후된 경제 여건으로 이민 또한 증가하였다. 1980년대는 정부 부채와 실업률 증가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았다. 1980년 대, 모두가 가난하고 힘겹게 먹고살던 시대. 거리에는 부랑자와 고아가 넘쳐났던 그때. 오갈 곳 없는 소녀들은 막달레나 수녀원에 감금되었다.
펄롱의 어머니 역시 미혼모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임신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정결하지 못한 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런 그녀를 받아준 사람은 미씨즈 윌슨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가정부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아이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미씨즈 윌슨의 도움으로 펄롱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미씨즈 윌슨의 도움으로 펄롱은 가정을 꾸렸고 예쁜 딸 다섯을 낳았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수녀원에서 대량주문이 들어온다. 큰 딸 캐슬린은 학교가 쉬는 날이면 아버지를 도와 사무실에서 회계 장부를 기록한다. 펄롱이 배달 간 사이 남직원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지 걱정한다. 펄롱은 언제나 딸들을 걱정했다.
석탄 배달을 갔던 펄롱은 추운 겨울 맨발로 복도를 물걸레질 하는 소녀들을 본다. 소녀 중 한 명이 자신이 강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며 데려가달라고 사정한다. 수녀원과 세탁소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녀원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 어느 새벽, 펄롱은 수녀원에 석탄을 쌓아 놓기 위해 창고로 들어간다. 창고에 누군가가 있다. 맨말의 가여운 소녀가 있다. 펄롱은 깜짝 놀란다. 이렇게 추운 날, 잠옷차림의 맨발이라니! 펄롱은 급히 소녀를 데리고 수녀를 찾아간다. 당황한 수녀는 수녀원장을 부른다. 뭔가 숨기는 듯한 어색한 행동들. 수녀원장은 선금이라며 석탄 대금 봉투를 내민다. 수녀원장은 조용히 떠나라는 눈빛을 보낸다.
소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세라 레이먼드. 수녀원에서는 앤더라고 부른다고 한다. 앤더는 남자이름이었다.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남자 이름을 부르다니 인간이하의 취급이었다. 펄롱은 소녀에게 자신의 이름과 직장위치를 알려준다. 소녀는 울음을 터트린다. 펄롱이 나가자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
펄롱은 어머니를 생각한다. 자신들의 딸들도 생각한다. 어머니의 가족은 어머니가 부정하다며 순결치 못한 행동을 비난하며 임신한 딸을 버렸다. 갈곳없는 어머니를 미씨즈 윌슨이 받아주었다. 윌슨 덕분에 펄롱과 어머니는 무사했다. 언젠가 내 딸들도 수녀원의 딸들처럼 그런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즐겁지 않다. 발걸음이 무겁다. 세상을 사랑해서 오신 예수님의 탄생날 크리스마스. 소녀들의 고통때문에 나는 안락하다. 아내 아일린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받는 선금 50파운드를 보고 기뻐한다. 정육점 외상값을 갚고도 칠면조를 구매할 수 있다며 기뻐한다. 펄롱은 기분 나쁘다. 가족과 미사를 드리러 가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회사직원들과 저녁을 먹은 후 펄롱은 수녀원 창고로 향한다. 설마 설마 하면서 세라 이름을 부르며 창고 문을 연다. 설마는 역시였다. 맨발의 세라는 창고에서 떨고 있었다. 펄롱은 외투를 입히고 데리고 나온다.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본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펄롱의 앞날에 고통의 시간이 열린 셈이다. 아니다. 고통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녀들의 고통을 알고도 모른척했던 그 순간부터 시작했다. 이제 달라질것이다.
나의 안위를 위해 모른척 할것인가! 세상에 알리고 고칠 것인가! 세탁소는 70년 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70년 동안 투쟁했던 모든 사람들과 고통 속에 살았던 소녀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나의 안위를 위해 모른척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반성하게 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