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여성 영웅 잔다르크
헨리 5세는 왕권이 안정되자 프랑스를 다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1415년 8월 헨리 5세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한다. 10월 전투에서 참패한 프랑스는 영국에 칼레를 빼앗기고 말았다. 영국은 여세를 몰아 2년 뒤 노르망디를 정복하고 또 2년 뒤 루앙까지 점령 하여 프랑스 북부 대부분을 손에 넣는다.
영국과 프랑스는 1420년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트루아에서 조약을 맺는다. 헨리 5가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영국과 프랑스의 왕이 된다는 조약이다. 한마디로 프랑스는 영국의 속국인 것이다라는 말!
그런데 1422년 샤를 6세가 사망하고 헨리5세까지 병사하게 된다. 트루아 조약에 의해 헨리 6세가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를 동시에 계승하게 된 것이다. 헨리 6세가 너무 어리다 보니 숙부인 베드퍼드 공작이 섭정을 하게 된다. 프랑스는 트루아 조약을 인정하지 않으며 영국 왕족의 섭정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 파리에서 쫓겨났던 샤를 6세의 아들 샤를 7세가 움직이게 된다.
전투와 왕권다툼으로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425년, 잔다르크가 살고 있는 동레미까지 영국군이 쳐들어 온다. 잔다르크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천사 미카엘, 성 카테리나, 성 마르가리타의 목소리가 들린다. 천사들은 그녀에게 군대를 이끌고 영국과 싸우고, 왕태자 샤를이 대관식을 거행하여 프랑스의 왕으로 인정받게 도우라고 말한다.
잔다르크는 마을의 영주인 백작을 찾아가 샤를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귀족들은 가짜왕을 앞쪽 의자에 앉혀놓고, 샤를을 백성들 사이에 끼어 놓았는데 잔다르크는 단번에 그를 찾아 인사드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그녀가 정말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게 된다.
샤를은 그녀를 군대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전투 준비를 끝내고 오를레앙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영국군대는 잔다르크를 보더니 뒷걸음치며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샤를의 군대는 랭스를 향해 진군했다. 가는 길목에 영국의 헨리6세를 왕으로 인정하는 트루아에 도착했다. 이상하게도 시민들은 샤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트루아를 지나 랭스에 도착한 후, 샤를 7세는 대관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관식의 영향력은 굉장했다. 사방의 도시들이 충성을 맹세했다.
오를레앙이 해방된 후, 샤를 7세는 영국과 평화협상을 체결한다. 잔다르크가 파리를 되찾고자 전투를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샤를 7세는 그녀의 가족을 귀족으로 임명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않게 된다.
1430년 부르고뉴군이 콩피에뉴를 공격하려 하자 그녀의 부대는 기습공격으로 콩피에뉴 시민을 도왔다. 하지만 그녀는 후퇴 도중 말에서 떨어져 부르고뉴군의 지원병에게 잡히고 만다. 부르고뉴군의 지휘관은 거액의 몸값을 받고 그녀를 영국군에 팔아넘긴다. 영국군은 잔다라크가 전쟁터에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종교재판으로 처형시키고자 계획한다. 영국군은 잔다르크를 프랑스의 루앙으로 보내 종교재판을 시행한다. 루앙의 종교인들과 시민들은 악마의 말을 듣는 마녀로 모함하여 화형 시켰다.
샤를 7세는 그녀가 석방되는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화형에 처해진 것을 막아주지도 않았다.
잔다르크가 죽고 난 뒤 백년전쟁도 종반에 접어들었다. 샤를7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연이어 승리했고, 1436년 파리를 탈환하였다. 그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재건하는데 힘썼다. 고등법원을 설립하였고, 방위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상비군을 마련하였다. 상비군의 급여를 마련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하였고 평민들에게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귀족 세력을 누르고 중앙집권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잃었던 영토를 대부분 되찾고, 나라 안팍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던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재심을 통해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했다. 재판 결과, 마녀판정이 취소되었다. 잔다르크는 신앙심이 깊고 충성스러운 기독교 여성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녀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한 용감한 소녀이자 프랑스의 영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숭고한 정신을 가진 순교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잔다크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병자호란의 명장 임경업과 닮은 운명
프랑스의 충신 잔다르크, 조선의 충신 임경업 장군은 비슷한 운명을 가졌다. 적의 손이 아닌 조국의 배신자들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안타까운 운명이다. 전쟁터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적군조차도 감탄하게 만들었던 놀라운 능력과 나라를 사랑했던 애국심은 두 사람 모두 훌륭하며, 많이 닮았다.
비록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훗날 명예를 되찾는 점까지 닮았다. 프랑스의 왕이 된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유죄 판결을 취소하여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카톨릭교회에서는 1920년 그녀를 성녀로 추대하였다. 임경업 역시 조선에서 그를 추모하는 서원을 세웠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쳐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임경업과 잔다르크! 배신자의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들의 신념과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그들의 삶이 가치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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