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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생각

종교개혁 배경과 종교 전쟁의 원인과 사례

by 책보는좀비 2023. 10. 18.

종교는 삶에 밀접한 영향을 주고 인생에 중요한 흐름이지만 종교전쟁은 정말로 무섭다. 여기에 정치적 의미가 섞이면 복잡하고 판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스라엘 전쟁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되었다.

종교개혁의 배경 

1054년 크리스트교(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로 나누어진다. 로마 가톨릭종교개혁(1517)으로 루터파, 칼뱅파, 영국국교회(성공회1534)인 신교와 가톨릭 구교로 나누어진다.
 
교황 레오 10세(타락한 성직자)는 성 베드로 증축을 목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면벌부(죄를 용서받는 표)를 판매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강력한 왕권 체계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면벌부가 판매되자 루터는 성경을 바탕으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다. 피지배층인 많은 시민들이 루터를 지지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된다.
 
스위스 제네바의 종교 개혁가 칼뱅은

  • 예정설 : 구원 받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 직업소명설 :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허락한 거룩한 일이며 누구든 땀을 흘려 직업에 헌신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부자가 된다면 신의 은총이자 구원의 증표이다.

주장하였고 사람들은 예정론의 불안을 떨쳐버리고자 노동에 충실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초기 기독교는 부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칼뱅의 주장으로 근면, 검소, 절약을 하며 경제적 이윤 추구하는 사상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며 칼팽파가 퍼져나간 것이다. 칼뱅파는 자본주의 경제와 영국의 청교도 혁명, 프랑스 위그노(신교를 부르는 이름) 전쟁에 영향을 준다.

종교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신교(루터,칼뱅) VS 구교(가톨릭) 전쟁이었다. 힘이 있던 구교가 신교를 탄압하면서 전쟁이 발생하였다.
 
네덜란드 독립전쟁(1567~1648)은 80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고 하여 네덜란드 80년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네덜란드를 지배하였던 에스파냐(스페인)의 왕 펠리페2세(최초 절대 왕정을 확립)가 구교인 가톨릭을 강조하면서 신교도를 탄압한다. 신교도가 많았던 네덜란드는 독립운동을 하고 북부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전쟁 시작되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국제적으로 독립국이 되고 남부는 벨기에로 분리된다. 
 
프랑스 위그노 전쟁(1562~1598)은 신교 위그노(신교 이름)와 구교 가톨릭의 갈등으로 1562년 전쟁이 터진다. 신교도였던 앙리 4세가 즉위 하면서 화해의미로 낭트칙령을 발표(1598:구교로 종교개종하는 선언)하면서 위그노(신교)의 신앙 자유를 허락해주면서 전쟁이 종결된다.
 
독일 30년 전쟁(1618~1648)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심화된다. 보헤미아왕좌에 구교를 믿던 페르디난트 2세(신성로마제국황제)가 즉위하면서 신교도를 탄압하자 보헤미아 의회가 신교도인 프리드리히 5세를 즉위시킨다. 그래서 1618년 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전쟁은 국제전으로 판이 커진다. 신교 국가는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으로 유럽 북쪽 지역에 해당하며, 구교 국가는 에스파냐, 오스트리아가 속한다. 프랑스는 구교 국가이지만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하기 위해 신교 국가에 참전한다. 정치적인 색깔이 섞인 것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30년 전쟁도 종결된다. 칼뱅파를 인정하면서 개인의 신앙(선택) 자유를 인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