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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생각

장미전쟁 튜더왕조 헨리8세 종교개혁

by 책보는좀비 2023. 10. 13.

영국은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치르면서 민족의식은 강해졌지만 프랑스(내륙) 안에 있는 중요한 영토를 잃어버렸다. 여기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랭커스터와 요크가문 사이에 장미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장미전쟁이란 두 가문의 상징이 장미문양이었기 때문이다. 요크는 흰 장미, 랭커스터는 붉은 장미 문양!

 

가문 대 가문 전쟁이라서 귀족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왕을 견제할 세력이 줄어들었다는 말로 왕권을 강력하게 만들 절호의 기회였다.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헨리7세가 튜더왕조의 문을 연 것이다. 헨리 7세는 절대왕권으로 민족국가를 수립하였고, 헨리 8세 때는 왕권이 더욱 강해졌다.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의 간섭을 밀어내고 독자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해 영국 국교회를 수립하였다. 

유럽은 루터나 칼뱅에 의해 종교개혁이 이루어졌지만 영국은 영국의 왕 헨리 8세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로 자신의 이혼문제 때문에 종교개혁이 필요했다.

 

헨리8세는 궁정시녀인 앤 불린과 재혼할 욕심으로 왕비 카타리나와 이혼을 원했다. 헨리 8세가 우리나라 숙종과 비슷하지? 숙종은 장희빈을 중전에 올리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했다. 쉽게 폐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희빈세력과 인현왕후의 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헨리 8세 역시 이런 탄탄한 배경이 필요했고 종교개혁을 계획한 것이다.

로마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절대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교황권 역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 8세는 자신은 왕이며 교회의 주교도 자신이 임명하였다. 모든 성직자들은 교회법 전에 왕법에 복종하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로마교회를 따르는 성직자들을 처형하고 수도원을 폐쇄하였다. 왕에게 반기를 드는 모든 사람을 강하게 탄압하였다. 이때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처형당한다. 이혼은 부정하다고 외쳤거든!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되었다. 에드워드가 어렸기 때문에 외삼촌이 섭정통치하였다. 왕자와 거지에서 읽은 것처럼 백성들에게 가혹한 법들이 사라지고 형식이 복잡했던 예법들은 간단해 진다. 가톨릭의 미사 대신 말씀예배로 바뀌었고, 성직자들의 독신제도도 폐지되었다. 가톨릭의 모든 의식이 폐지되면서 영국의 교회는 가톨릭과 분리된 국교회, 성공회가 탄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