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프랑스 땅 노르망디에 사는 지방공작 윌리엄이 영국 왕이 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이 시대는 봉건사회로써 귀족들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영주가 될 수 있었다. 영주의 장원(마을)에서는 영주가 왕!
윌리엄이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영주(지방분권)면서 영국 왕? 뭔가 족보가 꼬이는 것 같지만, 프랑스 땅은 영국 것이라는 것! 프랑스가 가만있을 리 없잖아? 그래서 왕을 중심으로 시작한 전쟁이 백 년 동안 진행되는 것이다.
13세기 영국의 존왕은 프랑스의 왕 필리프2세(노르망디 탈환)와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영토를 잃고, 나라를 말아먹는다. 국가재정 낭비로 왕이 많은 세금을 요구하자 귀족들은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을 작성하여 왕권제한문서를 승인시킨다.
그런데 존왕의 아들 헨리3세가 대헌장을 무시하자 귀족들은 시몽드몽포르(귀족들의 반란 지도자)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1264). 시몽드몽포르는 의회(성직자, 귀족, 시민대표)를 소집하고 국정운영에 대해 논의한다.
핸리 3세의 아들 에드워드 1세는 모범 의회(1295 신분제의회)를 개최한다. 나는 국민들과 소통하는 왕이야 이런 느낌!
프랑스 왕 필리프 2세가 프랑스 땅이었던 노르망디(영국소유)를 탈환함으로써 왕권강화의 발판을 삼는다. 필리프 4세(14세기)는 삼부회(1303:성직자, 귀족, 시민대표가 모인 의회)를 소집한다.
필리프 4세가 아들이 없이 사망하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4세의 외손자로써 프랑스 왕위를 요구한다. 하지만 프랑스 귀족들은 발루아 백작(필리프 6세:필리프 4세 조카)을 왕으로 추대한다.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를 침략하며 백년전쟁(1337~1453)을 발발한다. 전반전은 영국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후반에는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프랑스가 승리를 얻는다.
영국은 전쟁의 패배 후 왕위 계승을 놓고 내전이 생긴다. 가문의 장미 모양을 보고 장미전쟁(1455~1485)라 부른다. 랭커스 가문 헨리 튜더와 요크가문의 엘리자베스가 결혼하면서 헨리 7세가 즉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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