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1096~1270)은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에 참여한 크리스트교인들의 옷에 십자가가 있었다고 하여 십자군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로마는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는 게르만족과 노르만족의 이동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나누어진다. 동로마는 비잔티움제국으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동쪽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셀주크튀르크의 위협을 받고 상태였다.
셀주크튀르크는 이슬람제국의 아바스 왕조를 처리하고 바그다드를 정복(1055)하여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였다. 전쟁의 기세를 몰아 예루살렘까지 점령(1077)한다.
비잔티움제국은 크리스트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함께 지키고자 교황에게 도움을 청한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공의회(1095)에서 예루살렘의 탈환을 목적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교황은 동유럽 교회까지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군주, 기사, 상인, 농민들에게 참전을 권한다. 사람들은 영토 확장과 신분 상승을 꿈꾸며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 성직자들은 승리 후 얻어지는 땅과 재산을 주겠다며 사람들을 설득한다.
각 지역의 영주와 기사들이 모집되고, 사람들은 각자의 특색을 자랑질하며 단합하지 못한다. 군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은 시작된다.
1차 원정(1096~ 1099) 예루살렘을 탈환하지만 다시 뺏긴다.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7차까지 전쟁을 치르며 200년간 진행된다. 하지만 성지탈환은 실패한다.
십자군 전쟁 영향
200년간 전쟁으로 인력, 국력, 재정이 낭비되며 교황의 권위는 추락한다.
중세유럽의 봉건, 장원제도는 십자군 전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재력을 잃어버린 영주와 기사는 힘이 약해지고 봉건세력이 약화된다.
한편, 전쟁으로 인해 동방 물건들이 들어오면서 상공업이 발달하고 상공시민들이 부를 축적하게 된다. 매매가 활발해지고 시장이 형성되며 화폐가 발달하게 된다.
이로써 도시가 성장하고 장원(자급자족농촌공동체)이 붕괴된다. 이때, 유럽에 흑사병(14세기)이 유행하며 많은 사람들은 죽는다. 영주들은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농노들은 잉여생산물로 부를 축적하며 장원을 떠나게 된다. 봉건제도와 장원이 무너지면서 황제는 국민들의 힘을 얻는다.
왕은 기사가 몰락하자 월급을 주는 관료제와 상비군을 운영한다. 국가 운영비는 상공시민들의 재정으로 지원받는다. 왕은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정치 참전권을 부여하며 중앙집권국가를 형성하면서 절대왕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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